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봉투를 뿌려 당대표에 당선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이 9일 더 이상버티지 못하고 끝내 낙마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고승덕 의원이 지난 1월 5일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폭로한 지 35일 만이다. 특히 믿었던 고명진 수석의 양심고백이 있자 더 이상 버티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사퇴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제 박희태 의장 등 권력 실세를 향한 검찰 수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직 국회의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가 사실싱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정치권은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대한 진실을 낱낱히 밝혀낼 것을 검찰에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이 할 수 없다면 특검을 통해 권력형 비리의 고리를 찾아 끊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박 의장의 사퇴에 대해 야당은 '사필귀정'이라며 박 의장은 이제 검찰에 불려나갈 차례라고 압박했다. 한나라당도 앓던 이가 빠졌다는 듯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내놨다.

민주통합당 신경민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고명진 비서의 고백을 보도로 보고서야 황급하게 물러나는 박희태 국회의장에게서 날카로웠던 검사와 대변인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 슬프다"고 논평했다.

신 대변인은 "모든 진실을 알고도 꿈쩍하지 않는 검찰은 권력의 우산이자 심부름꾼이자 아바타임을 증명했다. 의장실과 화장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행세를 한 이유가 드러났다"고 개탄했다.

신 대변인은 "이제 권력은 거짓의 가면을 벗고 백일하에 나오기를 바란다. 물러날 사람은 알아서 물러나고 책임질 사람은 알아서 검찰로 가기 바란다"며 책임있는 자들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자유선진당도 박 의장과 검찰을 싸잡아 비난하며 이참에 개인 비리 연루뿐 아니라 금권선거와의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고 여권을 압박했다.

문정림 선진당 대변인은 "그간 측근들에 대한 수사 중에도 '기억이 희미하다'며 모르쇠로 일관하였고,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의장직의 사퇴를 거부해 오다, 검찰 수사의 칼날이 좁혀오자 그제서야 사 퇴의사를 밝혔다"고 박 의장을 비판했다.

문 대변인은 "박희태 전 의장은 검찰 조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심정으로,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과 관련하여, 한 줌 의혹 없이 전모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금권선거와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는, 전직 국회의장이자 원로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을 마지막으로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드높았다.

통합진보당 천호선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자신들의 불법을 아랫사람에게 뒤집어 씌워가며 자리와 권력에 연연하는 모습에 국민은 혐오감을 느낀다"며 "박희태씨는 이제라도 스스로 검찰에 나가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의원직도 내놓고 다 털고 국회를 떠나라고 압박했다.

천 대변인은 이어 검찰을 향해 "박희태 의원의 경선자금 전반을 수사해야 한다. 정권 실세의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나선 박 전 대표가 혼자서 자금을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도 높은 수사를 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또다른 측근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해서도 "당장 자리를 내놓고 검찰의 엄중한 수사를 받아라"고 촉구했다.

진보신당은 박희태 의장의 낙마에 대해 이명박 정권 몰락의 신호탄으로 내다봤다.

홍세화 대표는 이날 대표단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처음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더니, 전 비서 고명진씨의 검찰 진술 번복 이후 더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 이제야 '사퇴'를 선택한 박희태 전 의장의 비겁한 행태를 국민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상득·최시중·박희태, 이른바 '이명박 권력 3인방'의 첫 몰락은 박희태 의장으로 시작하겠지만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 칼 끝은 청와대를 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연루된 사건이라 짧게 반응했다. 그러나 앓던 이가 이제사 빠졌다는 듯한 눈치다.

황영철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 것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박희태 의장의 사퇴 발표에 대해 논평했다.

석희열 기자·김주미 기자 shyeol@dailiang.co.kr